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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칼럼】속죄(Atonement) - 강주연
마스터 기자 / iksanpress@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30일(금)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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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주연 극동방송 PD
ⓒ 익산신문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 이 생각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할아버지 죽음에 관한 죄책감, 이것은 나의 늦은 고백이다.

학창시절 3년 터울의 남동생과 무척 싸웠다. 서로 어렸고, 너무도 달랐던 성향 때문에 늘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 날도 동생과 싸우며 일이 커졌고 그것을 지켜보던 엄마가 속상한 마음에 신경을 쓰다가 엄청난 복통을 호소하셨다.

소화제를 먹고 누워계시기에 나아지겠거니 생각하고 다음날 우리는 학교에 갔다. 학교에 다녀온 후, 엄마가 복통이 심해져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는 스트레스로 인한 장꼬임 증상과 장폐색이 겹쳐 엄청난 고통과 치료를 병행하게 됐다. 엄마의 부재로 어쩔 수 없이 중학생인 남동생과 고등학생인 나를 돌봐주시기 위해 수원에서 외할머니가 오셨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흘렀다.

시간은 빨랐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미안함도 잠시, 상황에 대해 심각성은 점차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수원에서부터 외가 식구들이 오셨다. 삼촌, 이모, 그리고 이모부..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 기뻐하는 나와는 달리 그날따라 분위기가 무거웠다. 모두 할머니를 모시고 수원에 가야한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원래 당뇨가 있으셨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오랜 부재로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되셨다고 전해 들었다. 그렇게 할아버지 장례는 진행이 되고, 스트레스성으로 장이 꼬인 나의 엄마에게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이 사실을 접하면 호전되던 엄마의 상태가 다시 악화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모두와 연락이 되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기던 엄마는 지인을 통해 할아버지 장례 소식을 접하셨다. 충격에 떨리는 몸으로 병원에서 나와 할아버지 산소에 도착하셨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방관자처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해 여름은 정말 모든 것이 지독했지만 난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함도 시간이 흐르며 함께 흐려졌고, 철없던 손녀는 대학에 입학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미국에 홀로 유학을 가게 됐고, 한국에서 챙겨간 짐과 필기도구를 정리하다 오래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금색의 빤짝거리는 박스에 들어있던 샤프심 묶음..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주셨던 선물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수원역 앞에서 꽤나 큰 문구점을 운영하셨다. 본래 평안북도 출신인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의 고난을 겪으며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셨기에 학문에 대한 아쉬움이 크셨다. 그래서 피난 후 장사를 시작하며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문구와 학용품 장사를 택하셨다고 했다. 그런 할아버지께서 서울에서 손녀가 올 때마다 연필 한 묶음씩 주시며 하셨던 말은 늘 “공부 열심히 해라”였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며 주셨던 샤프심 묶음도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함께 내 방 한구석에 있다가 같이 미국까지 따라왔던 것이다.

타지에서 그 샤프심을 바라보며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할아버지의 사랑, 할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할아버지의 모습이 유독 그날따라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음은 자책감이었다. 사랑이 많고 늘 베풀어주셨던 할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바로 나였단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나..?!

내가 동생과 싸우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아프지 않으셨을테고, 할머니가 집을 오래 떠날 일도 없었을테고, 할아버지의 건강도 지켜졌으리라. 물론 예견되지 않은 일이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서 내 탓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지난 날이었지만, 나는 가슴을 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그날 동생을 참아주고 너그럽게 용서했더라면 할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진 않았을텐데.. 나 때문에 돌아가셨단 생각이 들어 너무 슬펐다. 홀로 반짝이던 금색 박스 안의 샤프심을 보며, 뒤늦은 속죄의 고백과 함께 난 그렇게 할아버지를 가슴에 묻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8년이 흘러, 그 동안 홀로 외롭게 지내시던 외할머니도 작년 11월 16일에 돌아가셨다. 그녀의 외로운 노년의 삶을 죄인 된 마음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일이 바쁘단 핑계로, 이젠 나의 아이를 양육한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또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할머니의 1주기를 지내며 이렇게 선조들의 사랑과 희생으로 후세대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세대가 세대에게 몸소 보여주는 실천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할머니는 나의 이런 죄인 된 마음을 아셨을까.

끝까지 나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죄송하단 말씀을 못 드렸다. 혹여라도 이 손녀를 원망하면 어쩌지란 두려움이 있어 먼저 말씀드릴 수 없었다. 늘 검소하고 성실했던 두 분의 삶을 기억하며 이젠 뒤늦은 나의 고백을 담아 ‘값진 인생을 살겠습니다. 당당한 어른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서겠습니다,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받은 사랑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되뇌어 본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인생은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 덕에 살아지는 것 같다. 11월, 감사의 계절을 보내며 주변의 그 ‘덕’이라 불리는 주인공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길 소망한다.

마스터 기자  iksan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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